요샌 아무것도 좋지가 않다.
음악도 시도 문학도 영화도 드라마도 다 보고 싶지 않다. 예전 같으면 활자 하나에도 마음이 두근거렸을 텐데, 요즘은 문장을 읽어도 금세 잊어버린다. 음악을 틀면 첫 소절만 듣고 넘겨버리고,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재생바부터 확인한다. 몇 분 남았는지만 보고 있다가 끝내 집중하지 못한다. 한때는 모든 게 나를 살아 있게 해주던 순간들이었는데, 지금은 다 희미해졌다.
고등학교 때까진 목표가 뚜렷했다. 좋은 대학, 그게 전부였다. 그 길 위에서는 지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가진 설명할 수 없는 결핍이 마술처럼 해결될 거라고, 나이브하게 믿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원하던 곳에 오니, 구멍은 더 깊어져만 갔다.
1학년 때 『소리와 분노』를 처음 읽었다. 퀜틴 컴프슨. 남부의 시골에서 보스턴까지 올라온 인물. 그는 하버드에 있었지만, 늘 고향의 기억과 몰락해가는 가치에 붙잡혀 있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공중에 매달린 사람. 나는 그에게 과몰입했다. 그와 같은 다리를 건너며 괜히 울기도 했다. 내 그림자가 그의 그림자에 겹치는 듯한 착각을 오래 붙잡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읽었을 때도 그 장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떤 거리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압살롬, 압살롬!』을 최근에 재독했다. 토마스 서트펜 역시 남부의 가난 속에서 출발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려 발버둥친 사람이었다. 그는 거대한 집을 세우고, 땅을 차지하고, 명문 가문과 연결되려 했다. 그는 그것을 “디자인”이라 불렀다. 출신을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가 세운 집은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혈통과 계급, 과거의 유산이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겉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본능적으로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가 가장 편안했던 순간은 높고 화려한 집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권력과 명예를 움켜쥔 채가 아니라, 전쟁에서 돌아온 뒤 피폐해진 농장에서 가난한 동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잠시 웃는 순간에 그는 안도했다. 자기가 세운 집의 웅장한 벽돌이 아니라, 흙냄새와 싸구려 술맛 속에서 편안함을 찾았다. 그것은 실패의 표식이 아니라, 끝내 벗어날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가 돌아가야만 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 멈춰 있었다.
나 역시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이면 늘 잠깐의 설렘 뒤에 금세 낯설어졌다. 강의실에 앉아 있어도, 동아리 모임에 있어도, 늘 반 걸음은 뒤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들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고 농담을 이어가는데, 나는 언제 말을 끊고 들어가야 할지 계산만 하다가 결국 입을 닫았다. 분명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봐도, 내 말은 어쩐지 이질적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몸은 분명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마음은 늘 약간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여름 동안 했던 일도 나를 더 허무하게 만들었다. 이력서에 한 줄은 채울 수 있겠지만, 정작 하루하루는 소모되는 기분이었다. 일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섞여버리면서, 어디까지가 업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경계가 희미해졌다. 돈을 벌긴 했지만 손에 남는 게 없었다. (SF 죽어!!!) ‘열심히 한다’는 건 분명 했는데, 그 열심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현타가 심하게 왔다. 내가 애써 쌓아올린 것들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금세 무너져버릴 허상일까.
포크너가 그리는 이야기는 그 순간들과 겹쳤다.
거대한 집을 쌓아 올리고도 끝내 편안했던 건 낮은 자리에서의 술 한잔이었다. 그 모습은 실패라기보다, 인간이 자기 근원으로 돌아가는 장면 같았다. 나도 그렇다. 거창한 무리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나, 여름 내내 애써도 공허만 남는 노동의 시간. 어쩌면 그것들은 내가 본능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자리를 보여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권태는 단순한 무기력만은 아니다. 앞으로를 향한 불안과,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는 체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덮고 나면 묘한 위로가 남는다. 퀜틴도, 서트펜도 끝내 자기 자리를 버티며 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버팀 자체가 흔적이 되고, 하나의 의미처럼 남는다. 나 역시 내 자리에서 하루를 버틴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시간에게 맡기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