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영어를 잘 못해서 역으로 모든 소설을 영어로 먼저 쓴다고 한다. 그런 제약 속에서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다나 뭐라나. 나는 하루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싫어한다..) 그래도 그 방법은 꽤 좋아 보인다. 나도 그래서 억지로 한국어로 일기를 써보려 한다.
나는 평생을 미국에서 자랐고, 동양인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컸다. 한국어는 여전히 서툴다. 복잡한 단어도 모르고, 동경하는 고전 작가들처럼 한자를 멋들어지게 끌어다 쓸 줄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다. 장식할 수 없으니 남는 건 내 마음뿐이다.
대부분의 교포들과는 다르게 나는 한국에 대한 ‘미스터리’ 같은 건 없다. 어릴 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 탓에 한국 인터넷으로 도피를 많이 했다. 태평양이라는 안전한 거리가 있었기에,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아무 말이나 던질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끼지도 못하고 친구도 없던 내가 그곳에서는 전지전능해졌다. 다른 이들은 통매음이라는 법에 묶여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자유로웠다. 그 자유가 마냥 좋았다.
21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가치관은 오히려 한국 쪽에 가까워졌다. 인터넷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람들과 완전히 섞일 수도 없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종종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좀 더 끼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살아본 적이 없음에도, 유학생들과 놀면서 거짓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나는 나였다. 주류 사회에 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체념만 커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공중에 붕 떠 있는 사람들의 예술에 끌린다. 내가 속하고 싶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제이슨 몰리나다. 그는 남부를 사랑하고 동경했지만, 메이슨-딕슨 선 위, 오하이오의 교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공장과 노가다의 이미지를 노래했지만, 정작 그의 손은 흙을 묻혀본 적이 없었다. 컨트리라는 장르는 특정한 규범을 요구한다. 험한 시골 출신, 허드렛일로 채운 삶, 두꺼운 남부 억양, 보수적인 정치색, 상남자다운 성격. 이 틀에 맞춰지지 않으면 아티스트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사실 리스너로써도 그렇게 느껴진다...) 몰리나도 그 간극을 괴로워했다. 동경과 현실의 틈새에서 늘 붕 떠 있었다.
그리고 또 나는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를 좋아한다. 아팔라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을 방황했다. 시골을 증오하면서도, 시골을 떠나지 못했다. 석탄과 산, 가난과 가족의 그림자가 그의 작품 곳곳에 남아 있다. 그의 단편에는 언제나 불안과 자기혐오, 그리고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정체성의 무게가 깔려 있다. 스물여섯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짧은 글들에는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절망과 동시에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태어났다”는 집착이 공존한다.
나는 그 감각에 깊이 공감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둥둥 떠 있는 기름 같은 삶. 나와 그들의 공통점은 습관적인 거짓말이 심하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정체성을 속인다면, 언젠가는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것은 없다. (사이코패스 같은 특수 케이스가 아니고선 말이다...) 결국 거짓말은 언제나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했다.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꾸며낸 허상이었으니까. 자기혐오의 사이클이 반복된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은, 정직한 삶만큼 안정적인 삶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도 끼지 못한다는 건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몰리나도 그랬고, 팬케이크도 그랬다. 떠 있는 사람들의 예술은 내가 외톨이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내가 경험한 것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해도, 그 사실만은 나를 지탱해준다.